우리 손으로 첫 개발한 카자흐스탄 육상 油田
혹한·테러 위험 이겨내 생산량 하루 7500배럴로 '코리아 석유'로 세계 수출
지난달 26일 낮 카자흐스탄 서북쪽의 악토베시에서 남쪽으로 230여㎞ 떨어진 유전 지대. 영하 섭씨 20~3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酷寒) 속에 지평선만 보이는 길이 이어졌다. 5시간 정도 차로 달리니 50m 간격으로 전신주 수백개가 늘어서 있었다. 이어 풀 한포기 없는 사막의 조그만 모래언덕 아래서 웅웅 소리를 내며 1.5m 높이의 펌프가 돌아가고 있었다. 땅속 600m에서 원유를 끌어올리는 소리였다.한국석유공사와 LG상사가 세운 현지법인 아다오일의 '바셴콜-4' 유정(油井)이다. 현지 필드매니저인 카이라 쿠룸바예프씨가 원유 상태를 점검하려고 파이프에 설치된 시료채취용 밸브를 돌리자 '퍽'하며 검은 액체가 뿜어져 나왔다. 그의 얼굴과 장갑은 순식간에 기름 범벅이 됐다. 차에서 내린 지 10여분 지났는데 추위로 귀가 떨어져 나가는 듯했다. 입김은 얼어서 헬멧 끝에 들러붙었다. 지상으로 나온 원유는 기포를 뿜으며 모래 위에서 부글거렸다.
- ▲ 지난달 26일 카자흐스탄 악토베주 바셴콜에 있는 아다오일 유전의 현장 직원과 한국석유공사에서 파견된 직원들이 원유 저장고 위에 함께 올라가 환호하고 있다. 이 유전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 기업이 개발한 최초의 중앙아시아 육상 유전이다. 앞쪽의 화염은 원유 파이프에서 가스 성분을 뽑아내 태우는 것이다. /악토베(카자흐스탄)=오종찬 기자 ojc1975@chosun.com
원유 생산시설은 매일 긴장의 연속이다. 서울의 1개 구(區)만 한 면적(36㎢)을 종횡으로 가로지르며 각 유정과 중앙처리시설을 연결한 길이 33㎞의 파이프는 항상 폭발 위험에 노출돼 있다. 원유 속에 녹아있던 가스가 지상에 나와 기화(氣化)하며 터질 수 있기 때문이다. 파이프 압력계의 숫자가 조금이라도 올라가면 중앙통제실에서 해당 유정을 차단한다. 경비원들은 테러 위협이나 야생동물의 공격에 대비해 총과 수갑으로 무장하고 있다.
겨울철에 이동해야 할 때는 반드시 차 2대가 움직인다. 한 대만 떠났다가 사고라도 나면 동사하거나 짐승한테 물려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서울에서 5000㎞나 떨어진 이 황량한 평원 위에 '원유 생산기지'를 건설했다. 소떼와 낙타 무리가 돌아다니고 유목민들만 살던 버려진 땅에서 특유의 땀과 끈기로 일궈낸 승리이다.
석유공사 파견 직원인 아다오일의 임종필(41) 선임엔지니어는 2009년 12월부터 5개월간 여기서 생산시설 건설을 지휘했다. 그는 "한겨울에 발전설비용 디젤연료가 얼어붙어 작업을 중단하거나 얼굴을 내놓고 일하다 코가 동상에 걸리는 경우가 많았다"며 "플레어 스택(flare stack·원유에서 가스성분을 뽑아 태우는 설비)에 처음 불꽃이 붙던 작년 3월은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라고 말했다.
아다광구는 한국 기업이 중앙아시아에서 탐사·시추·개발·생산까지 모든 공정을 자력으로 해낸 첫 육상유전이다. 2006년 석유공사 40%, LG상사 35%의 지분으로 사업에 착수한 지 4년 만인 작년 6월 유정 및 파이프라인과 저장·실험·반출시설을 모두 갖춘 '원유 생산기지'를 완성했다.
현재 개발된 19개 유정에선 하루 평균 2500배럴의 원유를 쏟아내고 있다. 내년까지 유정 24개를 더 파서 하루 7500배럴까지 생산량을 늘릴 계획이다. 7~8㎞ 떨어진 중앙처리시설(CPF)에선 원유에서 가스와 수분, 불순물을 제거해 높이 12m, 지름 10m 크기 저장고 4곳에 보관해두고 있었다.
지하 500~600m만 파면 기름이 터지는 이곳은 다른 지역에 비해 시추 비용이 적게 들고 개발 기간이 짧다. 류상수 석유공사 카자흐스탄 법인장은 "생산까지 10년씩 걸리는 다른 유전에 비하면 아다광구는 개발속도가 무척 빠르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생산된 기름은 원유 수송 트럭을 몰고 오는 중간 수집상들을 통해 반출된다. 내년에는 인근 켄키악의 원유 집유시설까지 30㎞ 길이의 파이프를 매설할 예정이다. 송유관은 이곳에서 다시 490여㎞를 달려 카스피해로 연결된다. 세계 석유 매장량의 5분의 1이 묻혀 있는 카스피해 주변에는 서유럽과 러시아로 직행하는 송유관이 그물망처럼 뻗어 있어 '메이드 바이(by) 코리아' 석유가 세계로 팔려나가게 된다.
◆넓어지는 한국의 '석유 영토'
한국은 직접 유전 개발 또는 해외 유전 인수로 '석유 영토'를 확대하는 중이다. 현재 국내 기업들은 37개국 175개 지역(해외자원개발협회 통계)에서 석유를 개발하고 있다. 남한 면적의 27배가 넘는 카자흐스탄은 그 핵심적인 곳.
뒤늦게 석유자원의 보고(寶庫)로 알려진 카자흐스탄에는 세계 각국 기업들이 대거 몰려들고 있다. 한국은 해상 광구인 '잠빌유전'(매장량 10억배럴)을 비롯해 카자흐스탄에서만 10여개 광구를 개발 중이다. LG상사 알마티지사 서원섭 부장은 "석유 자원 확보는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국가 간 전쟁인 만큼, 국가 이익의 최전선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
- ▲ 카자흐스탄 악토베주 바셴콜에 있는 아다오일 유전 개발 현장을 찾았다. 이 유전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 기업이 개발한 최초의 중앙아시아 육상 유전이다 / 카자흐스탄=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